예를들면 미수 기언, 미수 허목이 쓴 이경항(부사정공파 18세, 경연-징-지방-광식-감-성헌-길남-경항)의 묘갈명 등 일부 문헌에서는 5세 예빈시승 구 부터 세대수를 헤아리는데.....
이것은 1630년대에 숭정보서를 편찬할 당시, 이때는 취사 이여빈의 동생 이여암의 아들 진사 이희와 율재 이찬의 증손이며 이성백의 손자 이기원 이 두 분이 중심이 되어서 편찬을 했습니다. 그 전까지 일부 파벌, 주로 부사정공 계열이라던가 일부 파에서 독자적으로 파보를 편찬했다는 언급등은 있는데 1630년대 이전에 편찬된 족보는 현재까지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때 숭정보서의 내용 중에는 예빈시경 위의 3대 선조는 고찰이 되었는데 그 이전은 고찰되지 않았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16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오랫동안 실전된 5세 예빈시승 이구 위의 선조들에 대한 자료를 찾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1630년대 숭정보 이전의 족보 편찬에 대한 언급이 짤막하게 있는데, 1610년대로 이때는 부사정공파의 예조참판 이명남과 취사 이여빈 이 분들의 주도로 족보편찬 간행이 되었는데, 부사정 이경연의 장남 이징의 후손으로 이감-이성헌-이명남 이고, 취사 이여빈은 도촌 이수형의 현손입니다.
1610년대에 편찬했다는 족보는 현재 전하지 않는데, 정확히 언제 편찬되었는지 일시와, 당시 편찬된 족보명은 전하지 않습니다. 당시 편찬된 대동보? 여러 파를 망라한 최초의 통합 족보가 1610년대에 처음 편찬된 것은 확실해보입니다. 예빈시승 이구 위의 선조들을 찾아낸 시점 이후의 문헌에서 우계이가의 시조를 5세 이구를 시조로 기록한 것이 있다면 이것은 오류가 맞습니다.
어느 시점인지는 모르지만 1630년대에 예빈승 이구의 윗대 선조 3대를, 누가 어떤 문헌을 보고 찾아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에 가서 5세 예빈승 이구 윗대의 선조들을 찾아낸 것은 확실합니다. 따라서 초기의 선조들을 고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5세 예빈시승 구를 시조 내지는 1세조로 봤었던 것은 확실합니다.